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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 회색빛 사진…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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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 회색빛 사진…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묻다

[매일경제=전지현 기자] 회색빛 파인애플 절반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 실상은 시멘트 가루에 묻혀 있는 파인애플 사진을 찍은 후 위아래를 바꿔 전시장 벽에 걸은 것이다. 본래 색깔을 잃었지만 그 자태는 서정적인 회화 같다. 그런데 왜 멀쩡한 과일에 시멘트 가루를 뿌렸을까.

서울 삼청동 갤러리수 개인전에서 만난 중국 작가 지저우(49·사진)는 “2004년 파리 유학 시절,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옆집이 불타서 재만 남아 있더라. 모든 게 소멸한 화재 현장을 보니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 같았다. 그때 굉장한 모순을 느꼈고 진실과 허구가 뭔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2001년 9월 11일 테러로 잿더미가 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도 떠올랐다. 두 기억을 곱씹던 작가는 2010년부터 식물과 사물에 재를 뿌린 사진 작업 ‘Dust(먼지)’ 시리즈를 시작했다. 체에 걸러낸 고운 시멘트 가루로 식물원과 나무, 신발장, 사물함, 가구 등을 뒤덮은 사진 작품들을 발표했다.

그는 “친근한 사물에 시멘트 가루를 뿌려 소유와 시간, 실체 의미를 묻는다”면서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우리가 접하는 모든 관계와 정보에 대해 의문을 품고, 진실한 삶을 살려는 욕망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그 연장선상에서 시멘트 가루를 뒤집어쓴 식물과 사물들을 거꾸로 놓은 ‘Spectacle(화려한 볼거리)’ 시리즈를 보여준다. 진정성이 없어져 가고 피상적인 표상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서다. 뒤집은 파인애플 외에도 거꾸로 선 사다리 사진이 전시장에 걸려 있다.

그는 “카메라로 프레임 안에 가두면 대상의 느낌이 달라진다”며 “마치 우리가 사는 게 쇼의 일부분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전시장 입구 벽면을 초록으로 가득 채운 ‘Greenhouse(온실)’와 ‘Park(공원)’ 시리즈는 자연을 촬영한 사진 100여 장을 붙인 콜라주 작품이다. 다른 시간대에 찍은 여러 선인장과 관엽식물 이미지 파편들로 온실과 공원을 재구성했다. 겉보기에는 생기발랄하지만 다른 시간과 빛이 충돌하는 온실과 공원은 환상에 불과하다.

지저우는 “인공적으로 아름답게 만든 온실은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곳이기도 하다”며 “진실과 허구, 자연과 인공이 교차하는 공간에서 느끼는 아이러니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2017년 1월 서울 청담동 갤러리수에서 열린 국내 첫 개인전 이후 2년여 만이다. 당시 책을 쌓아올려 현대적 도시 모습을 형상화한 설치작업 사진이 화제를 일으켰다. 글로벌 사회에서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지만 점점 단조롭고 비슷해지는 도시에 의문을 제기한 작품이다. 종이로 된 세계지도를 구겨 거대한 산맥을 만든 ‘지도’ 시리즈도 주목을 받았다.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난 지저우는 치링허우(1970년대생) 대표 작가다. 국제 미술 시장을 점령했던 중국 아방가르드 1세대 이후 세대로 사회적 문제보다는 존재론을 담은 작업으로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다.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하고 파리 팡테옹 소르본대에서 회화를 공부한 후 그림 같은 사진을 발표해왔다. 전시는 1월 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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